이해인 시인

슬픈날의 편지 2008/12/11 12:16

정병식 2015. 9. 10. 14:29


슬픈날의 편지 - 이해인 
모랫벌에 박혀 있는 
하얀 조가비처럼 
내 마음속에 박혀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슬픔 하나 
하도 오래되어 정든 슬픔 하나는 
눈물로도 달랠 길 없고 
그대의 따뜻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이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듯이 
그들도 나의 슬픔 속으로 
깊이 들어올 수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지금은 그저 
혼자만의 슬픔 속에 머무는 것이 
참된 위로이며 기도입니다. 
슬픔은 오직 
슬픔을 통해서만 치유된다는 믿음을 
언제부터 지니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항상 답답하시겠지만 
오늘도 멀찍이서 지켜보며 
좀 더 기다려주십시오 
이유 없이 거리를 두고 
그대를 비켜가는 듯한 나를 
끝까지 용서해 달라는 
이 터무니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사랑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