햅번 이야기..

불타버린 국보1호 "종묘 방화·열차 테러도 생각했다" 2008/02/13 18:58

정병식 2015. 9. 10. 18:04

  • 방화 피의자 "종묘 방화·열차 테러도 생각했다"
  • 범행 자백… "토지보상에 불만, 경비 허술해 숭례문 선택"
    누각 2층 올라가 시너 뿌리고 불붙여… 2년전 창경궁 방화
  • 이석우 기자 / 박시영 기자
    • 경찰에 11일 붙잡힌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종기(70)씨는 열차 전복 테러나 종묘에 불을 지르는 것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종묘는 경비가 삼엄해 방화 대상을 숭례문으로 바꾸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숭례문 화재사건을 수사 중인 합동수사본부는 12일 "채씨가 '종묘에 불을 지르려고 했으나 밤에도 경비가 있어서 접근하기 어려웠고, 열차도 (전복 테러나 방화를) 해보려고 했으나 인명 피해가 많을 것 같아서 포기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 범행 하루만에 붙잡힌 무서운 노인… 12일 체포된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종기씨. 강제 철거당한 집의 보상문제에 불만을 품었다는 채씨는 경비가 허술한 숭례문을 범행 장소로 택했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 채씨는 숭례문으로 방화 대상을 바꾼 뒤 지난해 7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숭례문 현장을 사전 답사, 오후 8시 이후에는 감시인원이 없는 것까지 확인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채씨는 이런 사전 준비를 거쳐, 10일 오후 8시45분쯤 숭례문 서쪽 비탈로 올라가 미리 준비해 온 알루미늄 사다리를 이용해 숭례문 2층 누각으로 침입해 바닥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 방화 동기에 대해 채씨는 "2002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있는 토지가 재개발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것에 화가 나 불을 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채씨는 보상 문제에 대한 불만으로 2006년 4월에도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러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채씨는 창경궁 문정전 방화 사건으로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경찰은 "채씨가 문화재 방화 전과가 있고, 목격자들이 본 60대 남성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점을 들어 이번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보고 11일 강화도 하점면에서 붙잡았다"고 밝혔다.
    • 경찰은 채씨가 머무르던 강화도에서 범행 당시 입었던 회색 점퍼와 검은색 바지, 운동화, 가죽장갑, 시너 6ℓ 등 증거품을 압수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시간대에 채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숭례문으로 오르는 모습이 담긴 경찰청 교통관제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경찰은 "영상에 사람 모습이 1㎝ 정도로 작게 보이기는 하지만 판독 결과에 따라 공범이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13일 채씨에 대해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2/13/20080213001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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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 답사로 무방비 확인… 5분만에 침입·도주

    [불타버린 국보1호] ● 범행 과정
    소리나는 부탄가스통 대신 시너 준비
    전혀 제지 안받고 CCTV에도 안잡혀
    적외선 감지기 울렸을땐 이미 상황끝

    이석우 기자 / 박시영 기자

     

     

    채종기(70)씨가 600여년 역사의 풍상을 겪고도 꿋꿋하게 버텨온 숭례문을 시커먼 잿더미로 만드는 데는 불과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채씨는 지난 10일 오후 8시45분 숭례문에 진입, 2층 누각으로 유유히 올라가 바닥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오후 8시50분이 되기 전에 빠져나갔다.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았고, 급하게 뛸 필요도 없었다. 출동한 소방관들과 경찰, 사설 경비업체 직원은 채씨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범행 전 답사, 방화 최적지 선택

    12일 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채씨는 애초 종묘에 불을 지르려고 했으나 경비가 삼엄해 포기했다. 대신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던 숭례문을 방화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불을 놓기 전 치밀한 준비를 했다. 경찰은 "채씨는 숭례문에 불을 지르기 전인 지난해 7월과 12월 두 차례에 숭례문을 사전 답사했다"고 밝혔다. 채씨는 사전답사에서 야간과 휴일에는 숭례문 경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매일 오후 8시 이후에는 숭례문을 지키는 사람이 아예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은 "채씨가 숭례문 경계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고 범행 시간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 신문지와 부탄가스 4통으로 불을 지른 전과가 있던 채씨는 이번에는 시너를 선택했다. 경찰은 "문정전 방화 때 가스통이 폭발하는 소리 때문에 현장에서 붙잡힌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고, 불이 잘 붙는 시너를 이용했다"고 말했다. 채씨가 숭례문을 불 태우기 위해 준비한 도구는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 시너를 담은 1.5ℓ짜리 페트병 3개, 라이터 1개가 전부였다.

     

    ▲ 그래픽=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 양인성 기자 in77@chosun.com
    ◆무방비 숭례문, 제지 없이 침입

    채씨는 범행 당일 오후 5시쯤 이혼한 아내가 살고 있던 강화도 하점면에서 버스를 타고 고양시 일산으로 이동했다. 일산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오후 8시30분쯤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 도착했다. 주변을 조금 걷다가 숭례문 근처에 도착한 것은 10분 뒤인 오후 8시40분. 이 시각 숭례문은 무방비 상태였다. 평일 낮 3명, 휴일 1명의 관리자가 있었으나, 모두 오후 8시 이후 퇴근해버렸기 때문이다. 채씨를 제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폐쇄회로(CC)TV와 적외선 감지기 등 무인경비시스템이 있었으나, 채씨는 개의치 않고 유유히 숭례문으로 들어갔다. 오후 8시45분 숭례문 서쪽의 성벽을, 가지고 온 알루미늄 사다리로 타넘은 그는 곧바로 2층 누각으로 들어갔다. 서울역 주변 노숙자들이 야간에 수시로 숭례문을 들락거렸던 방법이다. 오후 8시47분 경비업체의 적외선 감지기가 울렸지만 감지기가 채씨를 막을 수는 없었다.

    ◆손 떨며 택시 타고 도주

    2층 누각으로 들어간 채씨는 페트병 3개 중 한 개의 뚜껑을 열어 바닥에 뿌리고 나머지 2병은 바로 옆에 놓았다. 그러고는 준비해 간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시너에 붙인 불은 순식간에 숭례문 기둥을 타고 천장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기둥에 불이 붙은 걸 본 채씨는 들어왔던 길로 되돌아 나왔다. 채씨는 불을 지르고 숭례문을 빠져나온 뒤 남산 방향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받고 대기 중이던 택시를 탔다. 채씨를 태웠던 택시기사 이모(59)씨는 "손님이 타고서 마침 남대문(숭례문) 쪽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소독하는 모양이죠'라고 물었지만 그 손님은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택시와 지하철, 버스를 갈아타고 일산의 아들 집에 도착한 그는 아들에게 범행 사실을 털어놨다. 그리고 11일 새벽 강화도 전처 집으로 돌아간 뒤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마을회관으로 나갔다. 마을회관에서는 동네 노인들과 하루종일 화투를 쳤다. 당시 화투를 같이 쳤던 유영수(76)씨는 "얼굴 표정이 평소보다 더 편안해 보여 별다른 의심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1일 오후 7시40분쯤 경찰에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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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마시고, 라면 끓여먹고… 숭례문은 노숙자 '안방'이었다

    "경보 자주 울려도 경비업체선 모른척"

    김진명 기자 / 조백건 기자

     

     

    지난 10일 전소된 숭례문(남대문)은 경비가 허술해 노숙자들의 '놀이터'나 다름 없었다고 서울역 일대 노숙자들이 증언했다. 인근 서울역 주변에서 만난 노숙자들은 "숭례문 누각은 시원하기 때문에 여름이면 고참 노숙자들이, 겨울에는 지하도보다 추워서 신참 노숙자들이 그곳에서 주로 잠을 잤다"고 말했다. 관할인 서울 중구청으로부터 야간 경비를 위탁받은 사설 경비업체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말도 나왔다.

    11일 오후 11시쯤 서울역 대합실에서 만난 노숙자 김모(54)씨는 "얼마 전에도 거기서 라면 끓여먹고 소주 마셨는데…"라고 말했다. 김씨는 불이 나기 전 1주일 전쯤 숭례문 누각 2층에서 잤고, 그때 노숙자 10여명이 모여서 라면을 끓이며 술을 마셨다고 했다. 그는 바람이 잘 통하는 숭례문 누각이 노숙자들의 '피서지'라며, 때로는 30여명이 넘는 노숙자들이 층층마다 모여 잠을 청할 때도 많다고 했다. 이들은 공사장 등에서 훔쳐온 알루미늄 사다리를 숭례문의 두 귀퉁이에 두고 정기적으로 숭례문을 찾았다. 이 때문에 소주 병, 막걸리 병, 과자 봉지 따위의 쓰레기가 널려 있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박모씨는 "자다가 용변이 마려우면 그냥 누각 위에서 해결했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악취가 진동할 때가 많았다"고도 했다.

     

    ▲ 국보 1호 숭례문의 관리를 상주 직원 없이 무인경비시스템에 의존했던 것으로 밝혀져 허술한 문화재 관리 실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숭례문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와 적외선 감지기. /연합뉴스
    노숙자들에 따르면 야간 경비를 맡은 경비 업체 직원들은 이들이 숭례문을 제 집처럼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 감아줬다. 심야에는 아예 순찰을 제대로 돌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노숙자인 윤모(52)씨는 "일주일쯤 전에도 숭례문에 갔는데 모인 사람들끼리 술을 마신 뒤 소리치고 싸우는 탓에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윤씨는 "어차피 자정이 넘으면 우리가 자러 오는 줄 알기 때문에 경보가 울려도 경비원들이 잘 오지 않았고, 온다고 해도 '나 노숙자인데 자러 왔다'면 상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숙자는 "우리가 하룻밤에도 여러 번 드나들기 때문에 경보가 몇 번씩 울리면 계속 출동하던 경비업체도 지쳤는지 나중에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31일부터 숭례문 경비를 맡은 KT텔레캅은 "우리가 야간 무인경비를 맡은 뒤부터는 적외선 감지기가 울리기 때문에 노숙자가 숭례문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부인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관리 부실 등의 문제가 있다면 여름철 숭례문 경비를 맡았던 이전 경비업체의 잘못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KT텔레캅이
    문화재청과 '문화재 지킴이' 협약을 맺고 숭례문 경비를 맡기 시작했지만, 숭례문을 특별 관리한 것은 아니었다. '국보 1호'를 관리할 전담반을 편성하지 않고, 주변 가게와 함께 관리해 왔다. 업체측은 침입자를 발견한다고 해도 사법권이 없으니 잡지 못하고, 화재 예방 업무를 우선하다 보니 경비 문제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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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상금 마찰 끝에 집 강제 철거되자 '극단적 집착'

    ● 방화 피의자 채씨는…
    3년 전까지 철학관 운영… 조용하고 내성적
    두 달 전 "나는 억울" 국가 비난하는 편지 써

    이재준 기자 / 오현석 기자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종기(70)씨의 가족들은 채씨의 범행 사실에 놀라면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6년 3월, 20년 동안 살아온 고양시 일산동 채씨의 집이 강제로 철거를 당한 이후 보상문제에 이상할 만큼 강한 집착과 피해의식을 보이면서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상 집착의 시작

    채씨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었다.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이지만, 젊었을 때 독학으로 주역을 공부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에서 3년 전까지 철학관을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이 지역의 한 역술인은 "채씨가 점을 잘 본다는 소문이 있어 손님이 많았다"고 전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채씨는 담배는 피우지 않고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소주 한 잔 정도만을 마셨다고 한다. 특히 평소엔 말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1년 채씨의 단독주택이 도로로 국가에 수용되면서 채씨는 달라졌다. 채씨는 보상 액수를 높여달라고 당국에 집요하게 요구했다. 고양시청 김기태(도시정비과)씨는 "채씨가 2주일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찾아왔다"며 "나중엔 시청 공무원 전부가 채씨의 얼굴을 알아 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채씨가 항상 공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어떤 설명을 해줘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을 만큼 고집스러웠다"고도 했다. 구청직원들이 돌아가며 채씨 집을 찾아가 보상액수를 받아들이라고 설득해도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가족들도 그런 채씨를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보상금으로 편하게 아파트에서 살자는 채씨의 처 이모(70)씨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때마다 채씨는 "내가 평생 모아 가진 재산이라고는 이거밖에 없다"고 말했다며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도로 건설사인 현대건설에는 "죽어버리겠다" "자해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채씨는 이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서울과 고양시에 살며 이사를 수없이 다녔다. 결국 2006년 3월, 30명의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쳐 집을 때려부수자 이씨는 "이렇게까지 된 것은 당신탓"이라며 채씨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후 채씨는 이씨에게 강화도 하점면에 집을 마련해 줬고 이 집에서 이씨와 함께 살며 사실상 부부 생활을 계속했다.

    채씨가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피해의식을 본격적으로 나타낸 것은 그 직후다. 전처 이씨는 "'내가 경찰 직원만 됐어도 감히 집을 뺏기겠느냐'며 경찰과 시청, 청와대를 욕했다"고 전했다. 또 딸(49)에 따르면 "국가가 가진 놈 편만 든다" "나쁜 놈들, 내 집을 이렇게 뺏아가냐" "왜 현대만 옳고 나는 그르냐"라는 말을 자주했다는 것이다.

    채씨는 창경궁 방화 이후 문화관광부가 수리비용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자 더 억울해 했다. 아들(42)은 아버지가 평소에 "왜 죄 없는 나만 죗값을 치르냐", "평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초등학교밖에 못나온 우리에게 왜 이렇게 못 살게 하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 12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서 경찰관계자가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종기씨가 범행 동기를 쓴 편지를 공개했다(오른쪽). 채씨는 지난 2006년 4월 창경궁 문정전에도 불을 질러 당시 문 일부가 불에 탔다(왼쪽). /연합뉴스
    ◆그릇된 이상 집착과 피해의식

    채씨의 이상 집착과 피해의식은 집이 철거된 후 강화군 하점면에 와 살면서도 계속됐다. 작년 1월 채씨는 김도일(49)씨가 운영하는 목장 분뇨탱크 때문에 물에서 악취가 심하게 난다며 하점면 사무소에 진정을 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3~4차례는 면사무소를 찾았고, 강화군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면사무소 직원들은 이틀에 한 번 이상 찾아오는 채씨 때문에 바로 목장을 조사하기도 했지만,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작년 3월 상수도 검사까지 정상으로 나왔는데도 채씨는 작년 6월까지 계속 민원을 제기했다.

    방화 두 달 전에 채씨가 집에서 편지지에 적은 글에는 국가와 사회를 비난하며, 자신이 피해자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편지엔 "나는 정부에 억울함을 수차례 진정하였으나 한 번도 들어 주지 않았다" "두 번이나 재판을 받았는데 합의부 판사는 한 번도 합의에 부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회사편만 들어 판결하는 판사는 없어져야 한다" "정부나 법에서는 옳은 말은 들어 주지 아니 하고 거짓말은 그렇게 잘 들어주는지"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는 채씨를 '반사회적 성격 장애자'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들은 계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특징이 있다"며 "사회에 대한 비합리적인 불만과 피해의식이 계속 증폭되어 결국 남대문 방화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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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경궁 방화 땐 집 나서며 "큰일 내고 오겠다"

    재판뒤엔 범행 부인

    김진명 기자

     

     

    숭례문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채종기(70)씨는 지난 2006년에도 사적 123호인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경궁의 문정전에 불을 질러 경찰에 체포됐었다. 당시 채씨를 붙잡아 수사했던 경찰과 변론을 맡았던 변호사는 그를 평범한 노인으로 기억했다.

    2년 전 서울 혜화경찰서에서 채씨를 조사했던 담당 경찰은 "외모로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채씨는 키가 크고 젊어 보였고, 평범한 인상이었다고 한다. 담당 경찰은 채씨가 방화 현장에서 체포될 당시 심하게 반항하며 범행을 부인했지만, 몇 시간 뒤 혐의를 인정하고서 안정을 찾았다고도 했다.

    창경궁에 불을 지르지 않았는데 근처에 있다가 누명을 썼다는 채씨의 편지 내용에 대해서 경찰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관람객 이모(당시 39세)씨가 화재 현장에서 채씨를 봤다고 진술했고, 현장에 남아 있던 부탄가스통의 일련 번호를 추적해서 찾아간 경기도 고양시의 한 대형마트 폐쇄회로(CC)TV에는 부탄가스를 구입하는 채씨의 옆모습과 뒷모습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채씨의 부인도 남편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은 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채씨가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이혼한 뒤에도 함께 살던 아내 이모(70)씨에게 "오늘 내가 큰일을 내고 오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채씨의 변호를 맡았던 최모(42) 변호사도 "수사나 변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아들과 사위들도 경찰이 확보한 CCTV 화면을 보고 '우리 아버지일 확률이 90%'라며 죄를 인정하자고 채씨를 설득했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채씨가 차분한 성격이었고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오늘 아침 신문에서 채씨가 체포됐다는 기사를 읽고도 그 사람이 또 같은 일을 저질렀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채씨를 기소했던 서울 중앙지검의 최모(39) 검사는 그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최 검사는 "그 사건을 맡았던 일은 기억나지만 채씨는 떠오르지 않는다. 강한 인상을 줄 만큼 법정에서 완강하게 혐의를 부인했던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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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붕밑에 인화물질 많아… 열감지기 설치해야

    목조문화재 화재방지 대책

    유석재 기자

     

     

    "부끄럽습니다."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은 12일 사직서를 제출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06년 낙산사 화재 사건 이후 마련한 문화재청의 화재 대책 매뉴얼이 부실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유 청장은 그 '화재 대책'이란 "목조문화재 전반에 대한 매뉴얼이 아니라, 단지 산불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말했다. 우발적인 화재가 아닌 의도적인 방화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화재에 치명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국내 목조문화재 대부분이 사실상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문화재 행정 책임자의 실토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또 다른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번 화재에서 드러난 목조문화재의 '3대 취약점'을 점검해 본다.

    ①지붕은 복마전→청소하고 경보시스템 마련해야

    이번 사고에서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이 바로 목조문화재의 '지붕'이다. 겉으로는 물론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이 목조건축물 지붕의 복잡한 구조다. 김정동 목원대 교수(건축사)는 "조사를 위해 문화재 지붕에 자주 들어가 보는데, 그 안은 쓰레기와 먼지 더미로 가득하기 일쑤다. 주인이나 관리자에게 청소를 권유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라고 말했다.

    건물 기둥은 단단하기 때문에 방화를 하더라도 좀처럼 불이 붙기 어렵지만,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지붕 속에는 온갖 인화물질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번 화재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지붕 밑을 자주 청소하고 안전진단을 해야 하고, 중요한 문화재에는 지붕 밑에 열 감지기를 설치하고 화재가 날 경우엔 경보음이 울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화재가 일어나기 전 고운 색감을 뽐냈던 숭례문 홍예문의 천장화./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 12일 이 천장화는 진화작업 당시 뿌린 물에 찢겨 흘러내린 뒤 강추위에 고드름이 돼 매달려 있다./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②관람객 잦은 출입도 위험→인화물질 통제해야

    목조문화재의 대부분이 관람객과 신도들의 접근과 출입이 잦은 곳이라는 점 역시 위험 요소다. 조선 중기인 1690년에 세워진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은 목탑 형식을 유지한 희귀한 건축물로 유명했지만 1984년 4월 화재가 일어나 전소되면서 보물 제163호에서 해제됐다. 현재의 건물은 1986년 복원한 것이다. 화재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한 신도가 법당 안에서 기도하던 중 촛불을 쓰러뜨렸기 때문이었다. 국보 제55호인 법주사 팔상전도 비슷한 사고로 화재가 날 뻔한 적이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숭례문의 경우처럼 의도적인 방화일 경우엔 대처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1986년 전북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 화재와 2004년 전남 무안 약사사 지장전 화재는 모두 방화였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목조문화재에 출입하는 것 자체를 막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일몰 뒤에는 가급적 개방을 삼가고 관람객이나 신도가 라이터나 성냥을 갖고 들어갈 수 없도록 아예 규정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③궁궐도 사찰도 아니면 더 위험→관리주체 일원화를

    숭례문처럼 문화재청의 '중요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의 우선 대상에서 제외된 120개 목조 건축물 중에는 소방 시설이 열악한 곳이 많다.

    특히 문화재청이 직접 관리하는 궁궐이나, 해당 사찰이 관리하는 사찰 문화재가 아니어서 관리 주체가 애매한 곳이 더 취약하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보 제51호인 강릉 객사문에 설치된 소방시설은 상수도 단 1개가 전부다. 소화전이나 저수조는 물론 화재경보설비도 전혀 없다. 보물 제308호인 전북 전주 풍남문에는 소화기 2대와 상수도 2개, 보물 403호인 경기 수원 화서문은 소화기 1대와 상수도 1개뿐이다. 한 문화재위원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곳은 굳이 문화재 관리를 위해서 예산을 요청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주남철 고려대 명예교수(건축사)는 "중요한 국가 문화재는 소재지가 어디든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주요 목재문화재 주변의 소방서에서는 해당 건물의 구조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유기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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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씨에게 집행유예 선고했던 판사

    "다시 해도 같은 판결할 것"

    손진석 기자

     

     

    "그때로 돌아가 다시 판결하라고 해도 같은 판결을 할 것입니다."(당시 부장판사)

    "당시는 관대한 형량을 선고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당시 주심판사)

    숭례문 방화 를 자백한 채종기(70)씨가 2006년 창경궁 내 문정전에 불을 질렀는데도 집행유예 판결로 석방돼 재범을 저지른 데 대해 "법원의 관대한 판결 탓"이라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당시 재판부가 "여러 가지를 고려한 합당한 판결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채씨를 재판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문용선 부장판사(현 광주고법 부장판사)는 12일 비판 여론에 대해 "당시로 돌아가 다시 판결하라고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며 "또 어떤 판사가 판결했더라도 그때는 비슷하게 선고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재판부는 채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화재를 불태웠을 때 적용되는 형법 제165조(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를 적용해 판결했지만, 여러 양형(量刑) 사유를 들어 형량을 깎아줬다. 주심 판사였던 오태환 판사(현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이날 "판결 당시 채씨가 심신 상실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더 형량을 깎아주기 어려울 정도로 관대한 형량을 선고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채씨가 피해회복을 위해 600만원을 공탁한 점 ▲자백하고 반성한 점 ▲68세의 고령인 점 ▲특별한 전과가 없는 점 ▲문정전이 1986년에 복원된 것으로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지 않고 전소(全燒)된 것도 아닌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문 부장판사는 "숭례문이 불타 버린 지금 시점에 당시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채씨는 재범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 격리할 필요를 못 느꼈고 검찰도 엄중처벌을 요구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그때 채씨가 숭례문처럼 중요 문화재를 태웠다면 중형을 선고해 경종을 울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 판사도 "당시에는 채씨가 재범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 판사는 "(재범) 예방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초범인 방화범에 대해 보호관찰이나 봉사명령 등을 선고하는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당시 재판부의 판단은 빗나간 측면이 있다. 당시 재판부는 채씨가 자백하고 반성했다고 봤지만 채씨는 경찰이 11일 채씨 집에서 압수한 글(두 달 전에 썼다고 진술)에서 "창경궁 화재는 내가 저지른 게 아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게다가 채씨는 2년 전 방화사건 재판 당시 처음부터 자백한 것도 아니었다. 두 판사는 이날 당시 판결문과는 달리 "(채씨가) 법정에서도 범행을 부인하다가 검찰이 증거를 들이대니까 그제서야 시인했다"고 말했다. 또 오 판사는 "채씨가 시너를 뿌린 전문 방화꾼이 아니었고 부탄가스로 신문지를 태우는 어설픈 범행을 했다는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지만, 이번에 채씨는 시너를 뿌려 숭례문을 불태운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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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화광은 화재 자체를 즐겨 채씨는 분노표출 위해 불 질러

    효과 극대화 위해 이목 집중될 대상 선택
    쉽게 따라할 수 있어 모방범죄 확산 우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 원정환 기자

     

     

    출가한 2남2녀의 자녀를 둔 조용한 성격의 70세 노인이 어떻게 국보 1호 문화재를 불지르게 됐을까.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종기(70)씨는 2005년 토지 보상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전까지 경기도 고양시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면서 배추, 무 등을 재배하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토지 보상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2006년 '창경궁 방화'로 재판을 받는 과정을 겪으면서 그의 분노는 건설회사, 판사, 경찰, 변호사, 정부 등 사회 전반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그는 방화 전 남긴 자필 편지에서 '억울함을 수차례 진정했으나 정부는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회사 편만 드는 판사는 없어져야 한다', '창경궁에 놀러 갔다 불난 곳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방화범으로 (나를) 몰았다' '변호사가 수차례 거짓 자백하라고 했다' '정부는 약자를 죽인다' '나는 억울하다' 등의 글을 남겼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호(범죄심리학) 교수는 "채씨는 자신의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자 그것이 분노와 적개심,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발전했다"며 "남대문을 표적으로 삼아 사회적 관심을 끌려고 했다는 건 문화재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자기 범행의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분노가 있을 경우 사회적 이목을 끌기 좋다는 점에서 '문화재 방화'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2006년 5월 경기도 화성 '서장대 방화'사건의 경우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범인이 분노와 좌절감을 참지 못하고 분풀이 범죄를 저지른 케이스다. 반면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방화범은 뇌질환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특별한 동기 없이 방화를 일으킨 유형이다. 당시 범인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와 인명 피해를 가져올지 분별하는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숭례문 방화범 채씨는 분노 표출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채씨가 2년 전 '1차 창경궁 방화'에 이어 두 번째 문화재 방화를 저지르고, 이를 위해 사전 답사를 한 것으로 보아 편집증적인 집요함도 보인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분노를 느끼지만 일반적인 사람은 좌절과 억울함, 분노가 있어도 건전한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며 "사회적으로 고립됐다고 느낀 채씨는 처음 방화에서 사회적 관심을 끌어내는 데 일부 성공했다고 보았고, 그래도 자신의 분노가 해결되지 않자 좀더 대범한 문화재 방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개 사회적 열등감이 있거나 반(反)사회적인 성격이 있을 경우, 충동 조절 능력이 없을 경우, 술 먹고 자제력을 잃었을 경우 등에서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신 교수는 분석했다.

    채씨가 두 번의 방화를 저질렀다고 해서 방화 자체를 즐기는 방화광(放火狂·Pyromania)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신 교수는 "방화광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대개 불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쾌감을 즐긴다"며 "채씨는 불을 질러놓고 현장을 바로 떠난 것으로 봐서 이와는 좀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방화로 1년간 복역하다 출소한 지 열흘 만에 길거리 화물트럭 적재함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다시 잡힌 노숙자 김모씨의 경우는 방화광에 해당된다. 방화광은 대개 대규모 공공시설 방화보다는 작은 규모의 화재를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모방 범죄가 발생할 수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동국대 이윤호 교수는 "방화는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없어도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할 수 있고 증거 인멸이 유리하기 때문에 분노 표출의 무기로 쉽게 쓰일 수 있다"며 "재범률이 높고 '모방 범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방화를 '폭력 범죄'보다 더 엄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는 "대형 방화사건 이후 모방 방화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방화 자체를 너무 선정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화재로 소실된 문화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어떻게 하면 문화재를 잘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더 모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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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화범 절반이 기소도 안돼

    미국에선 반사회적 범죄로 취급해 엄벌

    뉴욕=김기훈 특파원 / 최재혁 기자

     

     

    숭례문 방화 피의자 채종기씨가 2년 전에도 방화로 검거됐지만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리 사법시스템이 방화 범죄의 위험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벌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방화범죄를 반(反) 사회적 범죄로 규정해 검거와 처벌, 사후 관리까지 하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전국 1심 법원의 방화 사건에 대한 선고 결과를 보면, 총 679건 가운데 수감시설에 가두는 '자유형'은 25.6%인 174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대부분 집행유예(445건)가 선고됐다. 방화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금방 풀려난 것이다. 그만큼 방화는 가벼운 범죄로 취급됐다고 할 수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의하면, 2005년 적발된 방화범 가운데 불기소 처리된 사람의 비율은 47%(기소유예·혐의 없음 등 포함)였다. 기소된 인원(44%)보다 더 많았다. 살인·강도 등 '5대 범죄'에 속하지 않는 방화범죄에 검·경의 수사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는 방화범을 일반 범죄로 보고 재판을 기계적으로 하지만 외국은 행동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며 "충동 조절이 안 되는 방화범들에게 필요한 심리 프로그램도 전무(全無)하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1930년대부터 방화 범죄를 반 사회적 범죄로 취급해 8대 범죄 중 하나에 포함시켰다. 미국에서 방화는 최고 살인죄로 다뤄지는 중범죄이다. 즉 방화로 인해 인명 손실이 발생할 경우 최고 종신형이나 사형을 받을 수 있는 1급 살인죄로 처벌된다.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다 사망한 경우에도 살인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1995년부터는 미 전역의 범죄 상황을 다층적으로 분석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데, 방화범도 중요 관리대상이다. 박정선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특정 지역에서 어떤 연령층이, 어떤 범죄적 특성과 동기를 가지고 저질렀는지 분석해 예방에 활용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