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은 조선의 호국승군들에 의하여 축성된 호국정신의 상징적인 곳이다.
비교적 남한산성을 자주 찾는 편이지만 옛날에는 등산으로 왔었고
최근에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밥을 먹거나 드라이브 정도로만 다녀갔을뿐
만해기념관을 찾아 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왜 그렇게 건성으로만 다녀갔는지 모르겠다.

마침 친구들과 남한산성 올라가는 길에 있는 보리촌이란 곳에서
점심을 먹었길래 이날도 남한산성 드라이브나 해보자고 올라갔다가
운좋게도 임시개방중인 행궁구경을 하게 되었고, 행궁에서 멸지 않은곳에
있는 만해기념관까지 찾게 되었다.

성남쪽에서 남문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아직은 봄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남문 주차장에서 만해기념관 올라가는 골목길이다. 아직도 잔설이 남아있고
골목길은 조용하다.


만해 한용운 (1879-1944) 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27세에 설악산 백담사에서
승려가 되었다.
불교계의 개혁과 대중화를 위해 조선불교유신론과 불교대전을 차례로 저술하였으며
불교잡지 유심을 창간하여 언론 활동을 통한 불교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만해는 민족대표33인으로 3,1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옥중에서 쓴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에서는 인간의 기본 정신인 자유, 평등, 평화사상에 입각한 독립은
민족의 자존심이라며 끝까지 변절하지 않은 민족적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일본의 압박과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고 일관되게 독립운동을 하였으며
55세 때 부터 조선총독부가 마주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지은 심우장에서 해방
1년전인 1944년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하였다. (만해기념관 안내문에서 발췌)

만해기념관 입구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호젓하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 갔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만해의 시 군말 과 님의침묵 이 걸려있다.


전시품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사진을 찍을수 없다고 해서 입구에서
몇장만 승락을 얻고 찍었다.





만해기념관 계단에서 내려다 본 마을 풍경이다. 음식점들이 이곳까지
들어서 있었지만 골목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만해기념관의 뜰

만해 한용운은 육신의 고향인 홍성 생가, 정신의 고향인 내설악 백담사
삶의 현장인 서울 성북동 심우장등이 인연 깊은 곳들이다.
이곳 남한산성 만해기념관은 1981년 성북동 심우장에서 시작되어
1991년 남한산성으로 이전하였으며 만해정신의 중심도량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가 사용하였던 책과 저술, 독립운동 관련자료와 일화, 님의침묵
초간본을 비롯한 160여종의 판본과 귀한 자료들이 만해를 찾는 모든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 8호선 산성역 2번 출구로 나오면 9번 52번 의 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타고 산성종점에서 내려서 남문주차장 옆길로 들어오면 된다.
남한산성엘 가면 만해기념관도 꼭 들려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