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직분/누룩 분별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
[엡 4:11]
그가
여기에서 ‘그가’란 교회 안에 직분을 주신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 말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의 종류를 말합니다. 이 중 ‘사도’란 전권 위임자나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여 생명을 살리는 자를 말하고 ‘선지자’란 주님의 뜻을 미리 알고 선포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목사’란 이곳에서 목사라고 번역되었지만 원어로는 목자입니다. 목자란 양을 치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교사’란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목사라는 직분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목사란 목자와 교사의 두 가지 직분을 하나로 합해 놓은 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도 직분에 대해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말썽이 많았습니다. 고린도 전서 9장 1-3절을 보면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을 비판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3장 1절을 보면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이들은 자기가 사도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편지로 추천서를 보내기도 하면서 자신이 사도임을 그 추천서로 증명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도 직분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데 사도시대 이후 교회는 사도 직분을 없애버리고 대신 속사도 직분을 두었다고 합니다. 속사도란 사도의 제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에 의하면 속사도는 있어도 사도는 더 이상 없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교회에서 사도나 선지자 직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자와 교사 직분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카톨릭은 주교, 대주교, 신부, 추기경 등의 직분을 사용하고 있고 개신교는 전도사나 강도사나 목사라는 직분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성경하고 교회가 다른 것입니까? 지금의 전통 교회가 쓰고 있는 직분들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이 틀린 것입니까? 아니면 성경이 맞습니까? 그렇다면 전통 교회가 틀린 것입니까? 무엇이 맞습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말씀을 지키는 것임
[요 14:23-24]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폐한 것이 아님
또 마태복음 5장 17-19절을 보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음으로 제사법은 폐하였고 영적 예배로 바뀌었으며 다른 법들도 신약시대의 강화된 법으로 바뀌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1-22절을 보면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의 법을 그리스도의 법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또 마태복음 5장 27-28절을 보면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한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신약시대인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은 훨씬 더 강화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7장까지는 이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강한 자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기는 자를 말합니다. 이기는 자만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이기는 자만 새 예루살렘 성 즉 믿는 이들이 생각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계21:7)
바울 형제를 통하여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이란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의에 이르는 방법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힘쓰고 애씀으로 변화 받을 수 없고 믿음에 의지하여 예수님 안에 거할 때에 열매를 맺고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방법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또 선지자의 직분은 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을 통하여서도 이것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 직분을 보면 예수님의 열 두 사도가 있었고(눅6:13) 또 바울 사도가 있었으며(고전9:1,고전15:9) 그 밖의 몇몇 사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로는 유다와 실라와 아가보 등이 있었습니다(행15:32,행21:10) 여기에서 복음 전하는 자로는 스데반이나 빌립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둘은 집사였지만 그들의 일을 통해서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행6:10,행8:12) 교사 직분은 바울도 자신을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라고 말하고 있고 그 밖에 바나바도 사도 직분을 받기 전에 교사였을 것으로 보며 그 밖에 마나엔, 아볼로 등을 들 수 있습니다(행13:1,딤후1:11)
성경에 사도와 선지자 직분이 기록되어 있다면 교회는 사도와 선지자 직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스스로 기록된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 됩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들을 누룩이라고 합니다. 누룩으로는 변화 받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 누룩 없는 떡으로 변화를 받으십시다. 진리의 영이신 주님! 누룩에 취한 이 시대에 진리 편에 서고자 다짐하는 모든 자들 위에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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